등산 이야기

어느 프리솔로 암벽등반가의 죽음(1)

푸른바위 2025. 3. 6. 09:43

 

2021년 나는 정식적으로 암벽등반을 시작했다. 그전에는 산악종주를 하면서 능선릿지를 조금씩 했으나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21년이었다. 그리고 그해 동절기에 근력강화 운동을 하였다. 비록 이 분야 연장자들의 간섭으로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였지만 두손가락 턱걸이 5개를 완성했다. 2022년 봄에 난이도 5-13에 도전하여 성공했다. 그리고 북한산 노적봉 프리솔로 등반을 계획했다. 근력은 어느 정도 강화를 시켰으나 기술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인터넷으로 암벽 기술에 대하여 자료검색을 하였지만 괜찮은 기술 동영상이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최지호라는 프리솔로 암벽등반가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는 바위를 밟을 때 바위 안쪽으로 힘이 가도록 하라. 라는 투로 설명하였다. 무슨 말인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기회에 차라리 내가 기술을 정립해 보자. 라는 마음이 생겼다. 예전 능선릿지를 할 때에 밟는 요령에 대하여 생각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한 결과 바위 면을 수직하게 밟고 같은 방향으로 힘이 작용하도록 해야 한다. 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경사면이면 경사면에 수직, 직벽이면 직벽에 수직, 지면이면 지면에 수직이 결론이었다. 이렇게 밟아야 마찰력이 최대가 되어 미끄럼을 줄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 기술은 바위를 걸어서 등반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렇게 밟고 체중을 수직으로 작용시켜야 미끄럼을 줄일 수가 있다. 이러한 자세를 완벽하게 취하면 난이도 5-11까지 걸어서 등반이 가능해진다(나의 경우).

 

‘밟는 요령’이 정립되니 손기술인 ‘잡는 요령’은 너무 쉽게 정립되었다. 같은 원리를 적용하니 손에도 마찬가지였다. 홀더면을 수직하게 잡고 같은 방향으로 체중을 작용시키면 손이 홀더면에 압착이 되어 미끄럼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로써 바위를 잡고, 밟는 요령이 다 정립되었다. 그리고 이 기술을 ‘미끄럼을 제어하는 기술’이라고 이름을 붙었다. 이 기술은 바위를 잡고 밟는 데에 모두 적용되는 단 하나의 기술이다. 바위는 유형별로 오르는 요령이 다 다른 것이 아니라, 모두 이 기술 하나가 적용된다.

 

기술이 개발되자 북한산 노적봉 프리솔로 등반계획을 수립하고 훈련에 들어갔다. 2022년 하반기 등반을 목표로 하였으나, 간섭자의 방해로 포기하게 되었다. 원하지도 않는 그들의 방해가 삶의 계획을 망쳐 놓았다. 대신 하반기에 여러 곳의 능선릿지를 하면서 나의 기술을 숙달시켰다. 도봉산 오봉릿지, 불암산 1, 2, 3구역릿지, 북한산 서벽 개척릿지 등을 하였다. 그리고 하반기 말 무렵에 바위에 대한 이해도가 확 넓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바위를 다루는 요령이 이런 것이구나. 라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북한산 노적봉에 다녀왔다. 그전까지는 노적봉이 주는 위압감에 조금 올라 보고 내려왔는데 이제는 덤벼도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23년 봄에 결국 등반에 성공하게 되었다.

 

내 기술을 정립하게 된 계기가 최지호 씨의 동영상을 보면서였다. 그의 동영상을 본 시기가 2022.03월 무렵인 것 같다. 그 당시 프리솔로 등반가로 유튜브에 동영상이 올라온 사람이 그와 신성훈씨였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이들을 만나 프리솔로 모임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추락 사먕 소식을 들었다. 갑자기 머리를 무엇인가로 맞은 충격에 빠졌다. 비록 만나 인연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아주 애석했었다. 그리고 나는 이분의 죽음에 이 분야 연장자들의 간섭(방해)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추측이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도 이들의 간섭(방해)으로 여러 번 위험에 빠진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산 노적봉 남벽릿지를 할 때에 이들의 간섭으로 위험에 빠져 겨우 밧줄을 걸고 하산한 적이 있었다. 이곳은 평소 어렵지 않게 등반했었던 곳이었다. 불암산 1구간 C지역 등반 때에도 이들의 방해가 있었다. 이때에는 목숨을 걸고 등반했었다. 그래서 그때 이들에게 프리솔로 등반을 할 때에 간섭(방해)를 하면 간접적으로 내 목숨을 빼앗은 행위와 같다. 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이들의 행각으로 볼 때에 최지호씨의 사망도 이런 영향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때는 그가 더 유명했었기에 더 큰 간섭이 있었지 않나 생각이 된다. 그의 죽음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안타깝다.

 

공정한 경쟁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부정한 경쟁이 두렵다. 도전은 나에게는 설레임이다. 새로운 것에의 시도에는 항상 의지가 생겨난다. 하지만 이들의 간섭(방해)으로 포기해야만 했고, 좌절했었다. 저항하다 분쟁이 생기곤 했다. 주식투자에서는 더 심했다. 지금도 이들의 방해로 주식투자를 못하고 있어 생존이 위태로운 실정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에 새롭게 다시 도전하려고 한다. 그러나 어김없이 예전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도전하면 늘 이들이 붙어서 간섭(방해)한다. 나쁜 제도이다. 아니 범죄이다. 부당한 업무방해이며, 사생활의 침해이다. 반드시 척결되어야 한다. 부당한 간섭(방해)은 공정과 정의가 없는 사회로 만든다. 나쁜 제도는 국가와 국민을 망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