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時) 이야기/작가시

홀로서기---서정윤

푸른바위 2016. 1. 3. 08:43

둘이 만나 서는게 아니라 홀로선 둘이 만나는 것이다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2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 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 다시 쓰러져 있었다

 

3

지우고 싶다

이 표정없는 얼굴을 버리고 싶다

아무도 나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수렁 속으로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넣고 있는데 내 손엔 아무것도 없으니

미소를 지으며 체념할 수 밖에

위태위태하게 부여잡고 있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어느 날,

나는 허전한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서고 있었다

 

4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면

나는 <움찔> 뒤로 물러난다

그러다가 그가

나에게서 멀어져 갈 땐

발을 동동 구르며 손짓을 한다

 

만날때 이미

헤어질 준비를 하는 우리는

아주 냉담하게 돌아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파오는 가슴 한 구석의 나무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떠나는 사람은 잡을 수 없고

떠날 사람을 잡는 것 만큼

자신이 초라할 수 없다

떠날 사람은 보내어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일지라도

 

5

나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차지하려 해도

그 허전한 아픔을

또 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

마음의 창을 꼭꼭 닫아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이 절실한 결론을

<이번에는>

<이번에는>하며 어겨보아도

결국 인간에게서는

더 이상 바랄 수 없음을 깨달은 날

나는 비록 공허한 웃음이지만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아무도 대신 죽어주지 않는

나의 삶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6

나의 전부를 벗고

알몸뚱이로 모두를 대하고 싶다

그것조차

가면이라고 말할지라도

변명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할 수 있을때까지

나는 혼자가 되리라

 

그 끝없는 고독과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부리에 발톱에 피가 맺혀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서기>를 익혀야 한다

 

7

죽음이 인생의 종말이 아니기에

이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살아있다

나의 얼굴에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을때까지

홀로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홀로서고 있을,

그 누군가를 위해 촛불을 들자

허전한 가슴을 메울 수는 없지만

<이것이다>하며 살아가고 싶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랑을 하자

'시(時) 이야기 > 작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시---윤동주  (0) 2016.01.10
눈오는 날에---서정윤  (0) 2016.01.03
사모---조지훈  (0) 2015.12.27
인연설---한용운  (0) 2015.12.16
신부---서정주  (0) 2015.12.15